
1458년, 아마코 키요사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79년, 가독을 상속하였다. 가독을 상속할 당시에는 아마코가는 슈고 다이묘인 교고쿠 마사쓰네의 휘하의 슈고다이의 지위에 있었는데 츠네히사는 현처지에 불만을 느껴 그에게서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바쿠후로의 납세를 거부하였다. 이에 아시카가 바쿠후가 아마코가의 토벌령을 내리게 되고 츠네히사는 1484년에 각지의 호족들에게 공격을 받아 쫓겨나고 만다. 츠네히사는 2년후 다시 야마나가, 가메이, 마키씨와 같은 가신들의 힘을 얻어 세력을 모아서 토다 성을 습격하고 나서야 다시 자신의 거성인 토다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입성한 뒤 츠네히사는 이즈모의 유력호족인 1488년 미사와씨를 항복시키는데 성공, 순식간에 이즈모의 호족을 회유하여 제압하고 휘하에 두게되어 이즈모를 통일하게 된다.
이즈모를 통일한 츠네히사는 오우치와 야마나가로 그 창끝을 돌려 공격하기 시작한다. 오우치가로부터 배반한 아키의 다케다 모도시게, 빈고의 고시 다메노부를 돕거나 아니면 직접 오우치가의 영토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특히 모리 모토나리를 이용한 오우치세력에 있는 카가미야마성 공략이라던가 야마나가의 난죠무네카츠를 우에시성을 공략한건 큰 수확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확장정책에 힘입어 1520년 초에는 최대전성기를 맞아 아마코가의 세력은 주코쿠내의 이나바, 호키, 이즈모, 이와미, 오키, 하리마, 미마사카, 비젠, 비츄, 빈고, 아키국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518년의 장남 마사히사가 사쿠라이 소데키에 의해 사망한것을 시작으로 하여 모토나리의 배반, 자신의 삼남 엔야 오키히사의 모반 거기다 요시오키의 상경과 더불어 시작된 오우치가의 반격등으로 인하여 아마코가는 쇠퇴의 움직을 보이기 시작한다.
1541년, 향년 83세로 사망. 가독은 적손(嫡孫)하루히사가 상속하였다.
아마코가는 츠네히사가 죽은지 불과 25년후인 1566년에 거성 갓산토다성이 모리모토나리에 의해 점령당하며 멸망하고 만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성을 잃은 한 떠돌이가 일본의 한 부분을 쥐고 호령하는 것도 너무나 짧은 시기에 이루어졌고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손의 몰락또한 너무나 빨랐다. 이는 모리가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사람의 흥망성쇠는 자연의 이치란 당연한 진리를 새삼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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